언론
나눔
먹거리
기타 뉴스타파

고발뉴스

프레시안

나는 너를 모른다. / 서덕석 목사


그때 너는 거기에 없었다.
내가 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꼴찌의 비애를 씹으며
일마다 죽을 쑤어
되는것 하나 없이 참담했을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
너는 함께 있어주지 않았다.

석 달치 밀린 월급을 못 받아
생라면 한 봉지로 하루를 버티고
버스표도 없이 오도가도 못할 때
엄동설한에 싸아한 가스를 들이마시며
언 몸을 녹일 화덕에 갈아넣을 연탄 한 장 없을 때,
너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뿌리 뽑혀
비오는 길거리로 내어몰리는
전쟁터 같은 철거민촌이나
우리 손으로 세운 노동조합을 지키자며
밤새워 악을 쓰고 노래부르던
그 농성장에도
너는 코빼기를 내밀지 않았다.

내가 이시대의 아픔을 껴안고
목청껏 외치다가
무지막지한 군홧발에 채이고 얻어터지며
최루탄 가스에 눈물 흘릴때,
서대문이나 안양, 혹은 광주의 붉은 벽돌집에
손때 묻은 벽을 바라보며 썩는 세월,
숨막히는 외로움에 몸부림칠때,
너는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빌라도의 뜰
그 엉터리 재판정에서
그들이 나를 묶어 사형을 선고하고
옷벗기도 침뱉고 욕하며 목조르고 때릴때,
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회미해진 나의 시선이
혹시나 싶어 아래를 휘둘러보았을때에도
너는 거기에 없었다.

그런즉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 서덕석 시집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했다.' 중에서
시사인

백악관의 윤허를 받아야 하는 한국의 대통령

임헌형 : 한국정치인은 미국의 속셈을 읽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어떤 분에게 "한국의 대통령 선거권이 한국 국민에게 있느냐, 미국에 있지." 이런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영희 : 그것은 바로 내가 가끔 쓰는 표현이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대통령이 정치원리와 헌번적 규정에 따라서, 그리고 그 국민 주권의 의사표시로, 외부의 작용이나 간섭없이 자주적으로 선출 된 일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국가 자체가 자주/독립/주권적이어야 해요. 그런데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정부가 애당초 해방 후 미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 국가와 정부의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에 의해서 자주적으로 선출될 수 있을 것이며, 국민적 이익의 수호자로서 기능할 수 있겠어요? 해방 후의 역사에서부터 훑어봅시다.

1945년에서부터 48년까지 미국 군대에 의한 점령통치기구인 군사정권하에 놓였지요. 일본 총독통치의 변형이었지. 48년에 미국이 키워서 데려온 이승만이 남북 통일국가 수립을 거부하고, 국토분단을 전제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한 것도 이승만 자신의 권력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의 한반도 분단정책이 있었지요. 이승만을 '탁월한 민주주의적 지도자'니 '비타협의 강력한 반공주의적 영웅'이니, '코리아 민족의 수호자' 따위의 칭호로 추켜 올리며, 그의 철저한 반민주적/권위주의적/야심주의자적 행태에 눈을 감고 12년이나 뒷받침했던 미국이 1960년 봄에 이승만을, 한 마디 유감의 말도 없이 헌신짝 버리듯 폐기해 버립니다.

다음의 민주당정부도, 장면이라는 친미주의적 가톨릭 세력의 대표자를 미국의 낙점으로 집권시켰어요. 그러나 그 정권이 최초의 깨끗한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내에서 조성되는 정치적 불안정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자, 박정희로 대표되는 철저한 반민주/반자유적 극우반공 군인집단으로 대치시켰지요. 이후 18년 동안 미국 국가이익의 충실한 대리인이었던 박정희와 그 군부 권력집단이 또 쓸모없게 되자 미국은 그들을 대치할 세력을 물색하게 됩니다.

바로 전두환이라는 철저하게 타락한 군인과 그의 주변 집단이지. 박정희 통치의 끝에 와서 막간으로 연출됐던 김재규의 박정희 사살 사건에서도 나는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인 미국의 역할을 감지할 수 있어요. 전두환을 등장시킨 영화배우 출신 반공주의자 레이건 대통령은 즉각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과 극우반공주의적 자본의 대표인 나카소네 수상 정권으로 하여금 전두환에게 40억불의 '정권 탈취 사례금'조의 원조를 제공하게 했어요!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통해서, 일본에게 남한에 대한 경제적 보호역할 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보호역할까지를 위임했어요. 그 가장 상징적인 조치가 악명 높은 전쟁주의자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즉시 공식적으로 전두환을 첫 번째 국빈으로 백악관에 초청한 결정이지. 전두환은 아직 정식 대통령도 아니었어. 케네디가 박정희에게 윤허를 내린 19년 전에도 박은 쿠데타 권력의 총수였지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꼭 같은 수법이오!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에 공식 초청하는 상대방은 전통적으로 유럽국가 원수들이에요. 그런 전통을 깨고 첫째로 전두환을 초청했다는 것은 바로 미국이 남한에서 무엇을 원하는가를 말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전두환은 곧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천황과 대면하는 '영예'를 누립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다름아닌 미국과 일본의 의사에 따라서 선택되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입증하는 겁니다. 그런 직후에 전두환이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을 잔인무도하게 탱크로 짓눌러버린 행위를 미국은 배후에서 모두 조종했어요. 그 증거가 주한 미군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 미국정부 사이에 교환된 극비문서에, 지금은 낱낱이 밝혀져 있거든. 무서운 일이에요.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이기주의와 그 통치집단의 고도의 술책을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 '미국' 하면 껌뻑 주는 한국기독교의 신자들, 반공보수주의자들, 자본가와 돈 가진 사람들이 정신차릴 날이 언제일지.

미국과 일본의 합작품인 전두환은 그의 선배인 박정희처럼 장기집권의 꿈을 키웠지만, 역시 한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쳤어. 그러자 그 배후자들은 서슴없이 그를 갈아치웠어. 다음 노태우라는 아류 독재자가 선택됐지만, 역시 한국 국민의 배척과 함께 미국에 대한 용도의 한계 때문에 상전들에게 버림을 받았어.

그 뒤를 이은 '민정'들은 여전히 미국의 작용과 간섭과 공작의 산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긴 세월에 걸친 한국 국민대중의 정치적 각성과 주권의식의 고양으로 말미암아 점차적으로 미국의 농락과 공작의 작용이 감소되고 있는 형편이에요. 이 정도나마 오는데 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려야 이 국가와 정부와 국민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웬만큼이나마 벗어나 자주와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구만.

"대화" 중에서 (저자:리영희, 295~298쪽)